잡다한 이야기

단조로운 밴쿠버 생활에 활력 더하기

예쁜누리 2022. 11. 24. 12:21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느낀다고 한다. 나의 경우도 스무 살 이전엔 지루하리만치 시간이 안 가는 것 같더니 스무 살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순식간에 날아온 느낌이다.
50년을 살다 보니 그닥 새로울 일도 당황할 일도 잘 없는 걸까. 그나마 익숙지 않은 언어와 환경이다 보니 긴장해야 할 일이 종종 생기지만 여기 생활도 10년쯤 되다 보니 사람 사는 세상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종일 여러 가지의 프로젝트들을 해내야 했을 때 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진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거다.
언젠가부터 나의 생활이란 아이들 돌보고 그날그날 닥친 집안일을 해치우는 수준의 단순한 생활인데 지루하기는커녕 심심할 틈도 없고 하루, 일주일, 1년이 후딱 가버리는 느낌이다.

나 자신을 위한 새로운 자극과 경험이 줄어들면서 뇌가 굳이 시간 단위로 쪼개서 기억해야 할 필요도 없는 데다 오랫동안 뇌가 학습해온 대로 스트레스를 회피하는 방향으로 자동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공부를 지속해야 하는 것 같다. 일부러라도 뇌에 스트레스를 주면서 계속 새로운 자극을 주는 것이 늙지 않는 비결이고 삶을 허무하게 느끼지 않는 길 같다.

최근 노안이 와서 글씨가 겹쳐 보이고 책 읽기가 힘들어졌다. 게으름을 피울 또 하나의 핑계가 생긴 셈이다. 살아가면서 우리 몸은 퇴화하고 온갖 고단한 현실적인 문제들은 생겨나기 마련이다. 스트레스를 피하려 하는 건 인체의 자연스러운 반응이기 때문에 억지로 나를 새로운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시키기란 여간한 노력으론 어려운 것 같다. 물론 도전적이거나 새로운 걸 추구하는 성향의 사람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늘 존재하지만.

나도 사실은 그러고 싶다. 안주하고 싶은 마음과 더 안주하고 싶은 몸뚱이지만 그래도 어제와 오늘, 그리고 오늘과 내일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진작 알아버렸어도 그 자잘한 다름이 쌓이고 쌓여 변화한다는 것도 알기에, 어린 시절의 마음처럼 엄청나게 신나거나 설레지 않더라도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고 기억할만한 중요하고 새로운 경험을 계속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하루 중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운동할 때뿐이다. 아침에 운동을 시작할 때마다 안 할 핑계를 자동 스캔하며 꾀를 내지만 막상 운동을 못할 상황이 되면 짜증이 나는 건 또 무슨 심보인지. 운동을 할 때와 안 할 때 컨디션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운동을 하는 나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지속할 수 있는 것 같다.

누리와의 산책도 마찬가지다. 요즘처럼 비 오고 추울 때는 더 나가기 싫어 꾀를 부리고 싶지만 그렇게라도 유산소 운동을 하고 싶고 누리가 즐겁게 산책하는 모습을 보는 게 행복하기 때문에 기꺼이 귀찮음과 게으름을 이길 수 있는 것 같다.

최근에 월요일 아침에 김대건 성당 문화센터에서 성악을 배우고 있는데 이것도 월요일 아침만 되면 자꾸 핑계를 만들고 싶어 진다. 노래 그까이꺼 뭐에 써먹나 싶다가도 노래를 잘해보고 싶다는 마응과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뿌듯한 마음을 갖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알기에 일단 집을 나설 수가 있다.

8월부터는 화요일에 그림을 배우러 다니고 있다. 몇 년 전에도 한번 시도했다가 선생님이 계속 데생만 시켜서 지겹기도 하고 입시를 주로 하는 선생님 스케줄 사정으로 한두 번 빠지다 보니 흐지부지 중단됐었다.
이번 선생님과의 수업은 아직은 재밌다. 아직까진 큰 망설임 없이 집을 나서고 있다. 선생님은 미술이 상류층만의 전유물이 된 것이 안타깝다 하셨다. 그림 그리는 게 어려운 게 아니고 누구나 집에서 혼자 생각한 것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선생님의 교육 목표다. 선생님 자신의 작업도 생각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형태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면서 즐거워하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구상화 형태로 옮아가고 있다고 하신다. 특히 어른들은 살면서 봐온 게 많기 때문에 기초부터 차근차근하지 않아도 얼추 따라 할 수 있고 가장 중요한 건 계속 흥미를 갖는 거 기 때문에 스스로 재밌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리라고 하신다.

선생님 작업실. 최근 거의 작업을 안하는데 사람을 가끔 그리신다고. 예전엔 관심이 선생님 자신의 관념이었는데 지금은 사람으로 옮아왔다고 하신다.

선생님의 이 마인드가 너무 좋고 내가 원하는 지점이기도 해서 매 수업 시간마다 즐겁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금은 남의 그림을 보고 베껴내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수준이지만 이렇게 즐겁게 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나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만사가 귀찮은 갱년기 단조로운 생활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기 위한 나의 노력들이다. 일단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한번 해보는 거다. 여기에 최근 하루에 한 포스팅하는 숙제가 추가됐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쉽지가 않다. 어려우니까 해볼 가치가 더 있는 거겠지. 이렇게 한 가지씩 추가해가 보자. 식상하지만 도전하는 그 자체가 의미를 갖는 거니까.

부끄러운 습작들을 기록용으로 공개해 본다.

우리 가족. 여기까지가 몇년전 5개월 정도 배웠던 소묘들. 정말 지겹고 힘들었는데 어떤 형태를 그림으로 옮기는 일에 조금은 겁이 없어진듯.
처음 그려본 채색화. 고흐의 해바라기 따라 그려보기
고흐의 해바라기
또 해바라기를 그렸다
원본
두번째는 호주작가 Criss Canning의 작품 따라 그리기
원본
유튜브 보면서 따라 그림. 원작자는 정말 쉽게 쓱쓱 그리던데 정말 어려웠다
원본 그림 https://youtu.be/Vl74o0wPAAM
아크릴화 하면 떠오르는 바닷가 선셋 그림. 역시 아직 내게 쉬운건 없다는걸 실감함
원본그림 https://youtu.be/dQObG8wGobA
다시 해바라기. 세번째이다보니 조금 수월해지지 않았을까 기대했는데 완전 헛물콌다ㅠㅠ
원본그림 https://youtu.be/frpgF80Hpeo

따라 그릴 수 있도록 아름다운 그림과 작업과정을 올려주신 유튜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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